[팬픽] Bad Time by 리나인버스

『Bad Time』







01.
한 사람이 있다.
찬란한 검십자가의 지팡이를 든 채 조금은 힘들게 서 있는 그녀는, 망설이는 눈으로 자신의 앞에 있는 또 하나의 사람을 바라본다.
이미 한차례 전투가 치려졌는지 ‘그녀‘의 몸 여기저기엔 전투의 흔적이 그어져 있다.
그 상처들의 범람 속에서도 그녀는 그것을 개의치 않고 단지 슬픔의 마음으로 자신의 적이자, 소중한 사람을 마주한다.

어떻게 해서 이렇게 되어버린 것인가.
이유는 잃은 지 오래다.
그저 안타깝고, 슬프고, 아플 뿐.
비극을 끝낼 수 없다는 걸 알 뿐이다.

그리고…
그 비극의 끝이 자신의 손에 달려 있다는 것도…

이번 일이 일어났을 때부터 심연에서부터 갈망했던,
일이 지금에 이르는 것에 세상을 저주하며,
그저 자신의 적이자 소중한 사람을 마주 할..뿐이다.

자신과 자신의 소중한 사람을 상처 입힐 수밖에 없는 것을 알면서도,
그녀는 그녀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향해 나아가려 한다.
그것이 세상의 빌어먹을 이치라는 것이라는 걸 그녀는 알고 있으니까.







02.
한 사람이 있다.
더 이상은 슬픔을 모르는 붉은 눈동자는 자신의 최후의 적을 관찰하고 있다.
아니, 바라보고 있다.
예전에는 너무나 좋아했던, 가족이라고 겨우 알게 된 그녀가,
지금은 자신의 최대의 적이다.

어째서 이렇게 되어 버린 것인가.

하지만 지금은 그런 사소한 건 중요하지 않다.

다만,
지금 그녀가 자신의 적이라는 것과,
그녀는 지금 그녀를 죽어야 한다는 것.

이 두 가지만이 그녀를 움직이는 원동력이다.

다른 이들은 말한다.
내가 속은 것이라고…

부정하지 않는다.
어둠을 받아들인 건 그녀 스스로였으니까.
그 어둠의 속삭임을 거부하지 않았으니까.

모두가 잘못된 선택이라고 한다.

그녀는 그것에는 의문을 제기한다.
어둠이라고 해서 모두 나쁜 것은 아니다.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는지가 관건.

사람 하나하나는 다 틀리니까,
생각하는 것도 다를 수밖에 없다.

한번 정한 것은 그대로 밀고 나가는 게 그녀의 성격.
이번 일도 그녀는 그녀의 고집대로 밀고 나갈 것이다.

최후까지……







03.
그녀가 묻는다.
“이제는 그만 둘 수 없나?”

그녀가 대답한다.

“처음부터 각오한 일입니다.”

그녀가 다시 묻는다.

“이제는 진짜 이유를 알려 줄 수 없는 기가?”

그녀가 다시 대답한다.

“진짜 이유 같은 건 없어요. 처음부터 끝까지 저는 이렇게 하고 싶어서 하는 겁니다.”

그녀가 결국은 참지 못하고 폭발한다.

“그걸 말이라고 하냐?!! 니가 지금 ‘한 짓’이 어떤 건지 알기나 하냐?! 알고서 그런 말을 하는기가?!”

그녀는 이전처럼 대답한다.

“잘 알고 있습니다. 제가 여러분들을 상처 입혔죠. 다치게 하고, 아프게 했습니다. 몸과 마음 모두를…”

“그럼…그것을 하고 싶어서 했다?”

“네.”

“어째서!!”

“대화가 진행되지 못하군요. 그 질문의 대답은 조금 전에 대답했습니다만, 다시 알려드리죠. 하고 싶어서 그렇게 했습니다.”

“리나짱…”

“죄송하지만 그렇게 부르지 말아주세요. 지금 저는 예전의 ‘리나피에스트’가 아닙니다.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버린 채 악귀가 되어 여러분들을 상처 입히고 있는 마녀일 뿐입니다.”

“…”

“지금의 저는 당신들이 붙여 준 명칭으로 충분합니다.”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나..”

“네”

“‘피의 붉은 마녀’ 지금의 저와 딱 맞는 명칭입니다.”

“…지금 알았데이. 알아버렸데이.”

“…무엇을 말입니까?”

“리나짱 너의 진심을 말이다. 지금까지 이런 일을 한 진짜 이유를 말이다.”

“…그렇습니까? 하지만 그것을 알았다고 해도 이젠 늦었습니다.”

“맞다. 지금은 늦어뿟다. 더 이상은 손을 쓸 수 없는기라.”

“그렇습니다.”

“그래도 말이다. 꼭 이랬어야 했나? 다른 방법은 없었던 기가?!”

“말이 너무 길었네요. 이제 이 지긋지긋한 걸음을 끝내야 할 때입니다. 야가미 중령.”

“그래…이제는 끝내야 할 때다.”

“아시겠지만 다시 한 번 알려드립니다. 전력을 다하십시오. 아니면 죽습니다.”

“…”

“자..이제 시작합시다. 당신과 저의 악연의 종말을…”







04.
그녀의 손이 앞으로 펼쳐진다.
그것과 함께 그녀의 주위에 낡은 종이뭉치들이 나타난다.
꼭 죽은 불꽃이 살아나는 것처럼,
환상과 지독함을 동반하며 여성의 종잇조각들은 무겁게 불타오른다.
그것과 함께 그녀의 길고 긴 붉은 머리카락이 휘날리기 시작한다.
그것과 함께 그녀의 붉은 옷자락이 춤추기 시작한다.
그것과 함께 그녀의 붉은 눈동자가 어두운 빛을 내기 시작한다.

그것과 함께 성채화된 ‘리나 피에스트’의 최후의 일격이 시작되려 한다.



그녀의 손이 앞으로 펼쳐진다.
동시에 금색 검십자가가 빛나고,
동시에 그녀의 심연 속 파트너의 몸이 빛나며,
동시에 ‘야천의 서’가 팔랑거리기 시작한다.

주인의 명령에 의해 수백 가지의 마법을 지닌 오래된 책은 몇 개의 페이지에 잠시 머무르며 마법을 불려낸다. 페이지가 멈출 때마다 그녀의 뒤엔 순백의 마법진과 함께, 다채로운 색깔의 인공빛깔이 만들어진다.

하지만 그것은 축복의 빛깔이 아니라,
죽음과 종말의 추악한 빛깔이다.







05.
거대한 마법을 불러들인 두 사람이 마주한다.
절망의 붉은 눈동자와 고통의 푸른 눈동자가 교류한다.

그리고…
일순간이었던 정적이 종말을 고한 후.

두 사람은 마법의 폭풍의 빛 속에 빨려 들어간다.
형태가 일그러진다. 흔적이 사라진다.

지금까지 있었던 모든 것을 없애려 하는 듯,
광활하고 두텁게 마법의 빛은, 다가갈 수 있는 모든 것을 집어 삼킨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렸을까.

두 사람 중에 한 명은 누워있으며,
다른 한명은 선 채 그녀를 바라보고 있다.

끝날 것 같지 않는 눈물을 흘리며…







06.
“…드디어 끝났네요. 힘들었지만, 마음은 가볍습니다.”
땅바닥에 누운 채 잔잔한 웃음을 지은 채 그녀가 말한다.
표정은 매우 평온하지만, 몸 여기저기엔 붉은 선혈이 크고 작게 나 있다.

“이기적인 녀석”
하야테가 내뱉듯 말한다.

“그 어떤 비난이라도 달게 받겠습니다. 이것이 모두를 위한 길이라 생각…”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이건 아니데이…이건 아니다!!”

잔뜩 화난 목소리로 리나의 말을 가로막은 하야테.
하지만 리나는 여전히 작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한다.

“저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슬퍼하는 것 보단 저만 슬퍼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결국엔 모두를 슬프게 한 것 같네요.”

“왜 처음에 이야그 안했노… 왜 우리를 의지 하지 않았노… 아직까지 우리가 못미더웠나?!”

화난 목소리에서 고통의 목소리로 점차 변하는 하야테의 음성.
이에 리나도 얼굴이 조금 일그러진다.

“…그건 아니에요. 이제야 겨우 여러분들이 저의 가족이라는 것을 인지했습니다.”

“그런데 왜 그켔노?!”

“그렇게 생각했기에 결심이 선겁니다.”

“뭐?”

리나의 말에 ‘이 아이가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란 표정으로 그 아이의 얼굴을 쳐다본다.

“여러분이…너무나 소중한 가족이었기에, 잃고 싶지 않는 분들이었기에…”
“스스로 만들어 했던 욕심과 과오가 생기기 전에 그것을 없애고 싶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고… 나는 모르겠다. 모르겠어. 리나짱…”

리나의 말에 하야테는 혼란스러워한다.
이 아이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최후의 일격을 가하기 직전.
하야테는 리나가 자신을 이용해 죽음을 불려드리려 한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지금까지 왜 그러는 건지는 알 수가 없다.
그런데…

“제 병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마도사들과 같이 있으면 그 마도에 의해 제 링크코어가 엉클어지고 부서지는… 이상한 병이지요.”

“뭐라꼬?! 그게 무슨… 병이라니?!”

“숨길 수밖에 없는 병이었습니다. 그 병으로 인해 저는 여러분들을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들이 소중한 가족이라는 것을 알아버렸기에…그렇게 하기 싫었습니다.”

“…”

“그래서 이런 일을 저질러 버린 것이지요. 이렇게 하면 모두를 상처 입힐 수는 있지만 슬프게 하지는 않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건 저의 착오인 듯싶네요. 죄송합니다. 하야테. 저의 생각이 짧았어요.”

지금에 와서 이 아이는 자신의 일에 대해 정중히 사과한다.
어쩔 수가 없는 고집쟁이. 아…정말 어떻게 할 수 없는 아이이다.

“지금에 와서 사과한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다케도…”

“하하하…”

“정말 못됐데이. 리나짱 정말 못됐데이…”

다시 화가 난다.
어쩔 도리가 없었다고 해도…
이건 아니잖아… 안 그래?

“그건…저도 인정합니다. 그래도 마지막을 하야테와 함께 할 수 있어서 개인적으로 참 기뻐요. 마지막에 당신의 얼굴을 볼 수 있었으니…”

하야테의 끝임 없는 눈물을 바라보며 리나가 말한다.
스스로도 참 잔인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녀가 해주었음 했던, 일이었다. 그렇게 소망했다.

“리나짱…”

리나의 마음을 안 건지 하야테는 슬픔의 고통에 더욱더 눈물을 흘리며 바닥에 주저앉는다.

“모두에게 잘 이야기 해주세요. 하야테에게 너무하는 것 같지만… 그간 부리지 못한 애교와 부탁이니까요.”

주저앉아버린 하야테의 얼굴을 리나는 힘겹게 쫒는다.
다시는 볼 수 없는 얼굴이기에. 어떻게든 조금 더 보려고 노력한다. 안간힘을 다한다.

“야가…”

리나의 말에 하야테는 그저 아파할 뿐이다.

“그간 고마웠습니다. 린포스도 정말 고마워요. 린포스 같은 친우는 다시는 만날 수 없을 겁니다.”

하야테에게서 유니즌아웃할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린포스 츠바이는 하야테의 안에서 소리 내어 울고 있다.







07.
세상은 잔인하다.
그 잔인한 세상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죽을힘을 다한다.
그것이 나쁜 일이든, 좋은 일이든.

물론 나쁜 일, 좋은 일이라는 것을 정의하는 것은,
신이라는 존재밖에 없겠지만…



아무튼,
이렇게 또 하나의 생명이 사라지고,
남은 사람들은 고통스러워하며 생을 이어간다.
하지만 그 고통도 잔인한 세상은 가만 나두지 않을 것이다.
시간이라는 극약처방을 내려 그녀를 모두의 기억 속에서 점차 지울 테니까.



한 가지 다행인 것은,
지금 일어난 일이, 수많은 세상 속에 일어난 하나의 일이며,
우리들이 알고 있는 리나와 하야테들의 세상에는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모르는 일이다.
언제,
다른 세상에서 일어난 이 일이,
지금의 세상에 일어날지는…








세상은 잔인하니까.







- Fi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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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다세대주택 2009/03/14 23:15 #

    그야말로 나쁜 시간이네요... 쩝쩝;; - 무장괴한
  • 리나인버스 2009/03/16 17:36 #

    그렇지..하지만 나쁜것에도 종류가 있단다.(?)
  • Minosurin 2009/03/15 00:28 #

    일단 읽기전에 너무 반가워서 글남겨요 ;ㅁ;
    전 그동안 리나인버스님 글이 안보여서 혹시 링크가 사라진건줄 알았는데 ;ㅁ; 다시 보이네요
    흑흑흑....... 읽고 또 쓰겠습니다
  • 리나인버스 2009/03/15 00:34 #

    아하하^^; 반갑습니다~
    요새 일이 조금 힘들어서 포스팅을 잘 못하고 있지요.
    더불어 글도 거의 못올리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렇게 반가워해주시니 정말 기쁜 리나입니다^^

    미흡한 글 읽으려 해주셔서 고마워요^^*
  • Minosurin 2009/03/15 13:31 #

    이제냐 글을 남기네요 ;ㅁ; 어제는 너무 곤해서 자버렸.....
    부랴부랴 점심시간 되서 글을 올리네요 ㅇㅅㅇ;;;
    너무 슬픈 글이라 하염없이 애도의 눈물만 ;ㅁ;
  • 리나인버스 2009/03/15 13:50 #

    이리 덧글 달아주시는 것만으로 저는 그저 감사한 마음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느낌을 알아주신 것 같아 더욱더 감사감사^^;
  • wizard 2009/03/15 17:50 #

    엉엉 리나쨩~[어이!]
  • 리나인버스 2009/03/16 17:36 #

    ㅠ_ㅜ
  • 메이군 2009/03/15 18:04 #

    아흐흑. 오랜만에 올리신 글이 너무 슬프지않습니까아.
  • 리나인버스 2009/03/16 17:37 #

    그렇습니까?ㅜㅡ
  • 베르고스 2009/09/27 12:02 #

    너무 잘 쓰시니 오늘부터 활동한 팬픽작가는 서글픈...으헝헝
    정말 잘 쓰세요 리나님 글을 읽고 글쓰기로 결심했으니 뿐만아니라 실력있는 팬픽작가분들이 이렇게 많을 줄이야 (좌절)
  • 리나인버스 2009/09/27 18:12 #

    저 같은 허접글이 뭐라 좋으시다고ㅠㅜ
    저말고도 좋은 글을 쓰시는 분들은 많으시니 많이 읽으시면 분명 도움이 되실거라 생각됩니다. 팟팅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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