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픽] 기억 속 과거의 나는... - 01 by 리나인버스


01.
어린 시절의 나는 정말 자유분방한 아이었다.
귀족이긴 하나 서열이 낮았고, 그 것 때문이었는지 아버님은 소이 ‘잘나갔던’ 집안이었다고 해도, 현재 상황을 잘 파악하시어 장녀인 나에게 많은 것을 원하지 않으셨다. 다만 마도학원에 입학해 마도의 길을 걷기를 원하셨다. 어떤 마도의 길을 걷을 것인지, 어떤 직업을 가질 것인지는 나에게 전적으로 맡기셨다. 그렇게 나는 유년시절을 마음 편히 지냈다.

집안에선 어린애처럼 어리광을 부렸고, 하나 있었던 동생과도 참 즐겁게 하루하루를 보냈다. 부모님은 나를, 우리를 늘 다정하게 대해주셨다. 어려운 역사공부나 가문 공부를 억지로 시키지 않았고, 사교계에도 친한 분들의 파티에만 가끔 데리고 가 주셨다. 어려운 가문 공부는 아버님이 직접 알기 쉽게 이야기 식으로 풀어주셨고, 어머님도 귀족의 몸가짐 같은 것을 억지로 강요하지 않으셨다. 일상에서 저절로 익힐 수 있도록, 몸에 배도록 알려주셨다.

왕족의 권력을 등에 업고 망나니처럼 활기 치는 귀족들과 절대 권력의 왕족 사이에 있던 우리 가문은 의외로 평온했다. 왜냐면 할아버님이나 그 할아버님이 가문을 빛내주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명 ‘초짜 귀족’들은 우리 가문을 함부로 건드리진 않았다.

하지만 시련은 있었다.
아버님의 뜻에 따라 마도학원에 입학한 그날, 나는 왕따라는 걸 처음 당했다.
이유는 단 하나. 서열이 제일 낮다는 것이었다. 유서 깊은 가문이었다는 것은 그야말로 과거형. 지금은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하지만 나는 왕따라는 것을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십 수 년 전에 돈으로 가문을 사거나 운 좋게 귀족이 된 자들의 거드름을 보면 코웃음이 났다. 특히나 또래 아이들이 그런 짓을 할 때는 어이가 없을 정도였다.

20여명이 있는 반에서 소외되며 조금은 외롭게 지냈지만 그런 나한테도 친구는 있었다. 유유상종이라고, 나보단 서열이 높지만 도토리 키 재기의 서열 순위의 아이 두 명. 리아와 제니스가 그들이었다. 점심시간 때나 하교 시간 때 모여, 술래잡기나 마도술식짜기 놀이 같은 것들을 하며 지냈다. 소심한 아이들이 마당에서 놀 때 우리는 학원의 숲속이나 오래 된 건물 안에서 들키지 않게, 하지만 마음껏 활보하며 다녔다.

그날도 늘 그렇듯 술래잡기를 하며 숲속 깊숙이 들어갔다. 때때로 마도술래잡기를 하곤 했는데 이 건 일정한 마도를 이용해 상대방을 찾는 방식이었다. 방법 자체는 간단하지만 범위가 일반 술래잡기의 몇 배이기 때문에 마력을 잘 탐지해야 됐다. 나는 가끔 꾀를 내어 정해진 마력을 쪼개어 위장하기도 했다. 마력을 탐지한다지만 그건 100미터 까지였고 그 안에서부턴 육안으로 찾아야 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의 장난은 근방 탄로 나곤 했다.

눈치가 빠른 리아가 늘 내가 위장마도를 펼친 곳 근처에서 말하기 때문이다.

“티나. 위장은 안 돼. 정정당당하게 해야지.”

몇 번을 당하지만 숨어있는 근처에서 저런 소리를 들음 깜짝 놀라게 된다.
리아는 정말 내가 위장마도를 펼친 것을 알고 말한 것일까, 아니면 지레짐작해 툭 내 뱉은 말인 걸까, 아직까지도 미스터리한 부분이다.
아무튼 그날도 웃음을 참으며 나무 모습으로 위장하고 있는데 리아의 저 목소리가 들렀다.

나는 또다시 깜짝 놀라며 나도 모르게 뒷걸음치는데 얼마 가지 못하고 이상한 점을 느꼈다.
그리고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아래로 추락했다. 아마 깊은 웅덩이에 빠진 것 같았다.

몇 바퀴를 돈 건지도 모르겠다. 마도 술식을 짜는 것엔 자신이 있었던 나였지만 그 날만큼은 제대로 되지 않았다. 하긴, 이제 각 마도학원에 입학한 제1학년, 6살에 불과한 아이가 그 상황에서 침착하게 마도를 펼쳤다는 것도 말이 안 되겠지. 그렇게 끝없이 구를 것 같았던 나는 어느 순간 딱딱한 뭔가에 등을 부딪치며 멈춰 섰다. 부딪친 아픔 보다 어지럼에 정신을 제대로 차릴 수가 없었던 난 그대로 거기에 누운 채 신흠하고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마도반응이 느껴졌다. 나도 모르게 마도탐지술식을 계속 가동시키고 있었나보다.
그런데 느껴지는 마도반응이 매우 특이했다.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마도학원에서는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 마도는 곧바로 나에게 다가왔다. 조금 후에 나의 몸을 누군가 안아 드는 것을 느꼈는데 그것이 독특한 마도의 소유자인지는 알 수 없었다.
왜냐하면 사람의 손길이 닿자마자 나는 정신을 잃었으니까.



02.
포근한 감촉을 느끼며 눈을 뜨니 나는 커다란 침대에 누워 있었다.
아까 전의 사건으로 어지럼이 남았는지 아직까지 머리가 조금 아팠다. 아파오는 두통에 인상을 찡그리니 옆에 있던 사람이 말을 건다.

“정신이 드니?”

너무나 상냥하고 아름다운 목소리였다. 저절로 마음이 놓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말한다. 응이라고… 나의 대답에 그녀는 살짝 웃음 짓는다. 그 모습이 또 너무나도 예쁘게 보여 나도 모르게 따라 웃는다.

“낭떠러지의 나무에 있던 너를 내가 데리고 왔어. 어쩌다 그런 곳에 있게 된 거니?”

다른 어른이 물었음 바로 질책으로 여겼을 것이다. 허나 그녀의 질문은 그야말로 단순한 궁금증으로 느껴졌다. 어린 아이에게 무방비 상태를 만드는 마도의 울림. 그녀의 목소리는 이런 마력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있었던 사실 그대로를 알려준다. 친구와 마도 술래잡기를 했었고, 장난으로 위장마도를 펼쳤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눈치 챈 친구의 말에 놀라 뒷걸음치다 웅덩이에 빠졌다는 것을.

나의 설명을 들은 그녀는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구나. 나도 어릴 때는 친한 친구 두 명과 늘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단다. 그때가 생각나네.”

이에 나는 얼른 말대꾸를 한다. 어떤 놀이를 했었나며 순진하게 묻는다. 물론 존칭은 하지 않는다. 6살 아이로선 당연한 일이였다. 나의 돌발질문에 그녀는 몇 가지 예를 들어 상냥하게 설명해 준다. 나는 그것을 눈을 빛내며 집중하여 듣는다.

그런데 그녀가 이야기를 진행해 가는 동안 뭔가 위화감을 느낀다.
내 몸에서 느끼는 건 아니다. 두통은 예전에 사라졌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방안에서도 별다른 건 없다. 그럼 남은 건 하나. 어린 나에게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고 있는 그녀. 그녀에게서 알 수 없는 위화감이 느껴진다. 그것에 나는 자동으로 시선을 아래로 내리깔며 생각에 빠진다. 어느새 침대 옆 의자에 앉아 이야기를 하던 그녀가 말을 멈추고 나를 주시한다. 보통 어른 앞에서 이런 행동을 했다간 바로 꾸중을 들어야 한다. 그런데 그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녀가 어머님만큼 나이가 많아 보이진 않았지만 나 같은 아이도 아니었다. 어린 아이 생각으로도 그녀가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그녀자체에서 풍기는 분위기. 그것은 분명 품위와 고귀함이었다. 어린 나는 그것을 어른이라는 반증이라 생각했고 그녀를 어른과 동일시하게 느꼈다. 그런데 스스로 정의내린 그녀의 모습에서 이상한 것을 발견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저도 모르게 고민에 빠진 것이다.

한동안 가만히 나를 지켜보던 그녀가 이윽고 말한다.

“갑자기 왜 그러니?”

나는 즉각 대답한다. ‘언니’를 어디에서 본 것 같다고… 마음속으로 어른이라고 단정 지어도 곁으로 보이는 모습에서 나는 그녀를 언니라고 불렸다. 나의 말에 그녀는 다시 미소 짓는다.

“그래? 어디서 본 것 같니?”

그녀의 말에 나는 당차게 말한다. 곧 기억해 낼 거라고. 지금도 그렇지만 그 당시 나의 특기 중에 하나가 바로 기억력이었다. 한 번 본 것은 웬만해선 잊어버리는 일이 없는 나였다. 그 누구보다 기억력에 대해선 자랑스럽게 생각하였다. 어린 나의 자신감에 그녀는 여전히 미소 지으며 말을 잇는다.

“그렇다면 곧 알게 되겠구나. 내가 누구인지…”

왜일까… 그녀의 저 말에 어린 나는 뭔가 마음 한 구석이 아파오는 것을 느꼈다. 겨우 6살이었던 내가 말이다. 그리고 그 말이 주문이 되었을까… 우리 집의 거실에 있었던 가장 큰 그림 중에 하나였던 초상화가 문득 생각났다. 그 초상화는 아름다운 왕족분이 그려져 있었다. 집안 대대로 그분을 모셨다고 했다. 그 초상화의 모습이… 지금 내 앞에 있는 그녀와 매우 닮아 있었다. 아니 완전 그 분이었다.

그렇게 생각 한 순간 난 그대로 돌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어쩌면 몸을 떨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당황하는 모습을 본 그 분이 말씀하셨다.

“무서워하지 않아도 돼. 너는 물론 너희 가문에 아무런 해가 되지 않을 것이야. 너는 명석한 아이이니 이런 생각을 해서 무서워 진 거지?”

정답이었다. 내가 그분을 만난 것 자체에 나는 공포를 느꼈다. 서열이 높은 귀족이라면 그나마 나을 것이다. 허나 이분은 왕족. 옛날에 우리 가문을 빛내셨던 할아버님이 오셔도 해결이 되지 않는다. 어린 나는 그 때에도 이런 계산을 하고 있었다. 부모님한테, 하나밖에 없는 동생한테 해가 가지 않을까 라는 막연한 생각. 그리고 나의 이런 생각을 그 분은 단번에 알아채고 살펴주셨다. 그분의 말씀에 나는 대답도 못하고 고개만 끄덕였다. 그런 모습이 안타까우셨는지 쓸쓸한 표정을 지으시며 자리에서 일어나신다. 그리고…

“너와 이야기하는 동안 참으로 행복했단다. 현재 나한테 너처럼 말을 놓을 수 있는 사람은 아까 말했던 어릴 적 친구밖에 없거든. 그 중에 한 명은 오래전에 잠들었고, 또 한 명은 얼굴을 본지 오래되었어. 그래서 아무 거리낌 없이 나를 대해준 너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어.”

그분의 말씀에 나는 멍한 채로 눈만 껌벅이고 있었다.
여전히 쓸쓸한 표정으로 미소 지으시며 그 분은 고풍스러운 모양을 한 창가로 다가가 다시 말씀하신다.

“너와 만난 건 아무도 모르니까 걱정하지 마렴. 언제든 네가 돌아가고 싶을 때 가도 좋아.”

어디서 이런 용기가 나온 건지 알 수 없다. 허나 그 때 나는 분명 용기와 더불어 호기심에 온 몸을 맡겼을 것이다. 안 그럼 저런 말이 나올 수가 없다.

나의 말에 그분은 놀라며 뒤돌아 보셨다. 그리고 쓸쓸한 표정을 지운 채 오늘 본 여러 미소중 최고로 아름다운 미소를 그려주셨다. 그리고 나는 조금 더 그분과 이야기를 나눈 후 집으로 돌아왔다. 물론 집에 간 나는 나를 미치도록 찾은 두 명의 친구와 부모님에게 많은 비난과 꾸중을 들었다. 하지만 전혀 속상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행복했다.

왜냐면 지금부터 나는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엄청난 비밀을 갖게 되었으니까.
그것이 어린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제일 중요한 건 너무나도 좋은 친구를 가지게 되어서 제일 기뻤던 것일 거다.

내가 그분에게 했던 말. 그것은 바로…

“저는 앞으로도 계속 폐하… 아니 언니와 만나고 싶어! 나의 친구가 되어 주세요!!”

어리지만, 아니 어려서 할 수 있는 어리광이었을 것이다.
허나 그 분은 나의 저런 건방진 말을 단번에 수락하셨다. 그것도 너무나 황송한 말씀을 하시면서 말이다.

“부족한 몸이지만 잘 부탁해. 나의 조그만 친구여~”


이렇게 나와 그분의 인연이 시작된다.
번혁의 시기에 만난 나와 그 분의 행복하면서도 슬픈, 인연의 이야기가…



- 계속 -



쓴지는 오래됐으나 여러 사정으로 잠자고 있던 녀석입니다.
이 녀석을 이렇게 공개할줄은 몰랐네요^^;
곧 두번째 극장판이 개봉되죠?
거기에 감흥에 이리 일을 저질려 봅니다^^;
이제는 없다고 해도 무방할...이글루스 나노하팬픽쪽에
작은 흔적이라도 남기고 싶어 글 올려봅니다.
두번째 극장판 대박치길 기원합니다~^^


덧글

  • 무장괴한 2012/07/08 20:32 #

    왕보고 친구가 되어달라는 당돌한 아가씨 이야기군요.
    잘 보고 갑니다.
  • 리나인버스 2012/07/09 14:26 #

    사야도 보통인물은 아녔던거지 후후
  • 나키아 2012/07/08 23:43 #

    왠지 왕족분이 비비오의 본체인 성왕녀 올리비에일 거 같네요~
  • 리나인버스 2012/07/09 14:27 #

    아래 글을 보면 유추가 되지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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